중국 시대의 와인은?
오래전부터 포도주의 제조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난성에 위치한 자후 유적지에서 초기 신석기시대인 약 9천 년 전 최초로 포도를 사용해서 술을 빚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술은 포도와 산사나무 열매 그리고 꿀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전 세계 야생 포동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50종 이상의 포도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원사 시대를 거치면서 곰팡이로 곡물을 당화 시킬 수 있는 단계를 맞이한 중국에는 ㄴ수수나 쌀로 만든 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원사 시대를 거치면서 곰팡이로 곡물을 당화 시킬 수 있는 단계를 맞이한 중국에는 수수나 쌀로 만든 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과일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상나라의 도시 타이시에 과실주가 양조되었던 흔적이 남아있으며 주나라 시대의 주례에는 적어도 두 종류 이상의 술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과일로 만든 술이다. 기원전 2세기말에 유라시아의 포도가 중국으로 전래된 기록이 남아 있다. 한무제의 특사로 중앙아시아로 갔던 장건 장군은 유라시안 포도가 재배되는 것을 보고 장안으로 포도주 제조용 포도를 가져왔다. 이후로도 쌀과 포도를 사용하여 포도주를 빚은 기록들이 여럿 남아있다. 예를 들면 조조의 아들이자 위나라의 황제이던 조비의 경우 포도는 물론 포도로 담근 술을 극찬했다. 당나라 시기의 야주사에서도 포도미주야광배라는 시구가 포도주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알렸다.
중세 시대의 와인은?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포도 재배와 포도주 산업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었으나 미사에 필요한 포도주를 조달하기 위하여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포도나무를 재배하여 명맥을 유지하였고 곧 빠르게 부흥하였다. 오히려 수도원과 성당의 끊임없는 개량 덕분에 퀄리티 면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능가하는 발전을 이룬 시기다. 왜냐하면 수도원의 풍부한 노동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포도 재배와 포도주 생산이 가능하였으며 고품질의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여 관련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수도원에서는 대량으로 포도주를 생산하여 의식에 필요한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를 판매하여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포도주 판매에 이윤이 남게 되자 과학적인 방법들을 연구 및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진 포도주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수도원에서 포도주가 제조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포도주는 남유럽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북서유럽에서는 귀족 집안조차도 평소에 포도주를 물처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포도주는 보통 귀한 손님이 방문할 경우에 내는 고급 만찬의 일부였으며 귀한 손님을 따라온 기사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 식사에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했다. 계급과 중요도에 따라서 특별한 자에게만 차별적으로 내놓는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보르도 등 남유럽에서는 포도주를 물처럼 마실 수 있었다. 평민들도 값싼 저급 포도주는 일반적인 음료수로 마셨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서 중저가 포도주가 생수와 맞먹을 정도로 저렴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프랑스는 12세기 이래로 보르도와 부르고뉴에 포도 플랜테이션이 되어서 영국 네덜란드 등 지역에 대규모로 수출했다. 프랑스 포도주의 명성이 높은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으며 반면 스페인 포도주와 이탈리아 포도주는 역사도 깊고 생산량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데 이는 국제 수출보다는 자국에서 서민들과 부자들을 가리지 않고 마신 역사적 배경이 관련되어 있다. 유럽의 포도주는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까지도 전해지긴 했고 꽤 고급품 대접을 받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수입산이어서 물량도 적은데다 매우 비쌌고 기존의 곡주의 영향력이 강해서 제조법의 갈피를 못 잡았기 때문이다. 후환대에는 포도주를 뇌물로 바쳐서 주자사가 된 인물이 있어서 후대의 소동파까지 시로 조롱했는데 이건 포도주가 뇌물이 될 정도로 희귀성을 만족시켰다는 이야기이다. 이백을 포함한 시인들의 시들로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진 당 대 이후의 포도주 제조 시도에는 포도와 쌀을 섞어서 만들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즉 포도로만 만든 포도주는 모조리 서역 수입산. 이백의 시에도 포도주에 맞는 술잔은 유리잔이라고 하고 있는데 당대에는 유리 역시 대표적인 수입 사치품이었다. 결국 고급품의 이미지가 확고해져서 이후 포도만으로 발효시켜 마신다는 것을 발견한 뒤에도 곡주처럼 그 영향력을 확대시키지 못했고 포도주 자체 생산은 근현대에 들어서 가능해졌다.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던 중앙 아시아권과 접한 중국이 이 지경이니 한반도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 일본의 경우 전국 시대부터 남만인이나 홍모인등 사양에서 온 상인이나 선교사들에게서 정말로 어쩌다 입수하여 귀한 것을 조금씩 마시는 정도였으나 사실상 과시용 사치품이나 다름없었고 역시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다. 한편 이 시기에 포도주의 탄생지였던 중동 및 페르시아는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이 들어서자 크게 쇠퇴하였다. 명맥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포도주의 주산지를 유럽에 완전히 내어주게 되었다.
수질 때문에 포도주를 마셨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느 정도만 맞는 사실이다. 로마군에서 포스카를 사용한 것처럼 수질 정화에 포도주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식수의 보조품이었을 뿐 포도주를 식수의 대체품으로 썼다는 건 사실과는 다른 과장된 내용이다. 유럽은 지반에 석회가 포함된 지역이 많아서 물에 석회가 섞여 뿌옇게 되고 당연히 마시지 못하는 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데다 각종 오물로 인해 강물이 더러워지는 일이 빈번했기에 그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는 전설과도 같이 널리 퍼진 속설이 있다. 그렇기에 당시 중세에서는 포도주와 맥주를 물을 대신해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알려졌으며 이것에 대해 심지어 서양권에서 조차 오랫동안 큰 이의 제기되지 않은 채 학자들까지도 인용해오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근래의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포도주를 양조할 때에는 따로 물을 첨가하지 않지만 맥주는 그 제조 과정에서 대량의 깨끗한 물이 필요하기에 포도주는 몰라도 물 대신 맥주를 마신다는 속설은 맞지 않는다. 수질 문제 중 석회질에 대한 부분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고대 로마의 병사가 식수를 찾지 못하는 경우나 비상시를 대비해서 포스카라고 하는 식초 수준의 묽은 포도주를 상비하고 다닌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이것도 소독에 대한 얘기이지 석회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속설과 달리 유럽에서도 물을 마셨다는 기록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7세기 로마 제국 두 명의 의사는 물은 모든 종류의 식이요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며 가장 좋은 물은 맛과 향이 없고 눈으로 보기에 맑으며 마실 때 무엇보다도 기쁨을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세의 많은 수도원들이 양질의 수원을 도시에 보급하기 위해 애썼으며 이것은 도시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지반에 석회가 포함된 지역이 많아서 물에 석회가 섞여 뿌옇게 되고 마시지 못하는 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럴 경우에 어떻게든 깨끗한 물을 찾아서 마시려고 했지 물 대신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단지 영양 보출의 수단으로써 포도주를 다른 문화권에 비해서 많이 마셨을 뿐이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의 이뇨 작용으로 수분이 배출되기 때문에 술 자체가 식수 대용으로 적합하지가 않고 석회 섞인 물로 만든 술은 성분도 그대로인 데다 맛이 없어서 식수 대용으로 부적합하다.
'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인 초보의 와인의 대한 용어 라벨 이해하기 (3) | 2025.02.28 |
---|---|
와인 생산 지역과 구세계 신세계 포도주 나라들 특징 (1) | 2025.02.26 |
와인의 품질 및 와인의 분류( 식사, 이산화탄소 알콜) (0) | 2025.02.25 |
와인의 개요 특징 가톨릭에서 포도주 (0) | 2025.02.14 |
와인 초보자의 와인 공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2) | 2023.04.05 |